9월의 문장

사랑이야말로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네. 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, 이 세상을 설명하는 일, 이 세상을 경멸하는 일은 위대한 사상가가 할 일일 것이네. 하지만 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, 이 세상을 경멸하지 않는 것,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,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 그리고 외경심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는 것만이 나에게는 비할 나위 없이 중요한 것이네.

- Hermann Hesse 「Siddhartha」,1922

당신은 세상을 미워하나요, 사랑하고 있나요?

사랑은 우리를

사랑이라는 것은 글쎄, 내게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나 소중해서 주머니에 꽁꽁 싸매서 넣어다니다가 두고두고 좋아하게 될 것 같은 사람을 보면 주섬주섬 꺼내어 주고 싶은 선물과 같다.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, 이맘때쯤의 나는 작은 주택에서 마당에 깻잎을 키우면서 사랑하는 배우자와 고양이 두마리와 함께 살고 있을 줄 알았다. 어리고 순수했던 시절의 나는 그렇게 야무진 꿈을 꾸었다.

아픈 이별을 몇번 겪어내면서 삶의 방향을 다시 나 자신에게로 쏟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. 나는 틈틈이 삐져나오려는 감정을 잘 다독여 마음 한켠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. 그러다 참을 수 없을 때 쯤, 눈물을 몇 방울 떨어뜨리며 글을 써내려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.

눈물이 나는 날에 글과 음악은 내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곤 했다. 나는 매일 밤을, 사랑을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, 책 속의 문장에 기대고, 기도를 하며 잠들었다.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 온전히 나로 서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이 흘렀고, 그 끝에 나는 작은 책방을 열기로 용기를 냈다. 

허름한 구도심의 골목에 나만의 작은 정원을 만드는 일로, 내 귀여웠던 꿈을 작게나마 스스로 이뤄보기로 했다. 그 안에 사랑이 가득 담긴 문장들과 따뜻한 음악을 채워넣고, 식물과 책을 처방해주는 일로, 작은 기쁨을 느끼며 살면 꽤나 멋진 삶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. 

숨이 가쁜 사람들을 데려와 잠시 숨을 쉬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, 큰 돈은 벌지 못하더라도 내 앞가림과 두 고양이의 사료와 모래값정도는 벌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꿈꿔보기로 했다. 종이책을 파는 일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걱정을 한아름 떠안고서도, 헤헤 웃으며 내 길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.

아직 준비되지 않을 것들 투성이지만,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가자고 매일의 나에게 말해준다.  다가오는 이 가을을, 그렇게 내 색깔로 물들여가고 싶다. 천천히 깊고 진하게.

2020년 7월 25일 책방을 준비하던 여름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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